뉴스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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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농업기술센터, 농업인강사 12명 양성광주농업기술센터가 농업분야 기술과 경영방식(konw-how)을 현장에 전달할 농업인강사 12명을 양성했다.광주광역시농업기술센터는 16일 교육관 분임토의실에서 농업인강사 양성 교육 평가회를 개최했다.농업인강사 양성 교육은 전문농업인을 대상으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총 10회 40시간에 걸쳐 ▲DISC를 활용한 청중분석 ▲학습자중심 교수법 ▲전달자 역량 강화 ▲개인별 피드백과 상호평가 등 강사로서 갖춰야 할 소양과 강의기법으로 진행됐다.이날 평가회에는 교육생 10명이 참석해 ▲날씨변화에 따른 안정적 시설 관수요령 ▲4계절 포도이야기 ▲콩 다수확 핵심 재배기술 등 강의시연을 했다.광주농업기술센터는 교수태도, 교안자료 적절성, 소통력 등을 평가해 우수 교육생을 선정, 시상했다.우수 교육생은 오는 7월 열리는 신규 농업인교육에 현장강사로 출강한다. 또 농업인강사로 선정된 인원은 광주시 농업교육사업에서 현장실습강사, 귀농·귀촌 및 청년농 지도자(멘토), 영농상담사(컨설턴트) 등으로 활동하게 된다.교육 참여자는 “농업에 진입하는 신규 농업인과 청년을 대상으로 농업 지식을 공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시라 광주농업기술센터소장은 “지역 전문농업인이 농업교육 현장에서 최고의 농업기술과 경영방식을 전수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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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서 통일로’ 민족평화포럼 광주서 열려다변화하고 있는 세계질서와 남북관계 속에서 5·18광주정신을 바탕으로 평화의 시대, 통일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포럼이 광주에서 열렸다.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주간을 맞아 16일 광주YMCA에서 통일전문가와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4 민족평화포럼’이 열렸다고 밝혔다.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날 포럼은 5·18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통일 인사들을 초청해 오월정신을 계승하고 평화통일운동의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특히 김수복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장(80·뉴욕), 이철 재일 한국양심수동우회 대표(76·일본), 이용재 호주한인복지회장 등 해외에 거주하는 민주화운동가 9명이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더했다.이날 포럼은 ‘변화하는 남북관계와 통일운동의 실천과제’를 주제로 최은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사무처장의 발제와 팀별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강기정 광주시장은 “지구상에 분단국가는 한반도가 유일하지만 전 세계에 전쟁과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우리에게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남북정상회담은 큰 희망이었고 덕분에 우리는 평화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평화통일의 길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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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5‧18사적지 환경정비 추진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는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옛 광주적십자병원, 505보안부대 옛터 등 5·18사적지와 표지석 등 관련 시설물을 오는 12일까지 정비한다.광주시는 5·18사적지 정비를 위해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시와 동·서·남·북구 등 4개 구청이 교차점검을 펼쳐 5·18사적지 시설물의 훼손 유무와 환경정비 범위를 검토했다.5·18사적지 제1호인 ‘전남대 정문’을 비롯한 총 29곳의 5·18사적지 표지석(32개)과 상징조형물(17개)에 대한 세척·보수를 실시하고, 옛 광주적십자병원, 국군광주병원 등 보존사적지 4곳에서 쓰레기·잡풀·잡목 제거 등 환경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또 옛 광주적십자병원, 국군광주병원 등 5·18사적지 건축물의 외벽도장 손상, 창문 파손 등 경관 개선이 시급한 만큼 보수계획을 세워 특별교부세 등 예산 확보에도 노력할 계획이다.5·18사적지는 1980년 5월 당시 민주화운동 진원지, 격전지 등 5·18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간직한 공간이다.광주시는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복원·관리하기 위해 1998년 1월12일 전남대 정문 등 24곳을 사적지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29곳의 사적지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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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5‧18 영상’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광주시가 5·18민주화운동 관련 뉴스와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상 등 영상기록물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에 나선다.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29일 광주MBC와 업무협약을 체결, 그동안 광주MBC가 제작한 5·18민주화운동 관련 영상기록물의 디지털화를 추진한다.주요 협약 내용은 ▲5·18민주화운동 관련 영상기록물 디지털화 작업을 위한 상호 협력 ▲두 기관이 보유한 5·18관련 연구정보 및 기록물 상호 열람·제공 ▲5·18민주화운동 관련 교육·홍보·기록물 수집을 위한 상호협력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한 네트워크 구축 등이다.디지털화를 추진하는 주요 콘텐츠는 ▲광주MBC가 소장한 5·18 관련 뉴스 영상 ▲당시 사건을 기록한 다양한 다큐멘터리 ▲시민의 참여와 목격담을 담은 인터뷰 영상 등이다.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광주MBC의 방송영상 자료를 고해상도 디지털 형태로 변환해 연구·교육·전시 콘텐츠 제작 등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한 공익 목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김호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이번 협약으로 5‧18 영상의 단순한 디지털화를 넘어 역사적 사건을 보존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함으로써 5·18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교육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은 국내·외 연구자들과 국민이 기록물을 보다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완성된 디지털 아카이브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온라인 서비스 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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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소방경·김정민 소방장…광주소방, 4월의 우수 소방인 2명 선정강혜원 소방경, 김정민 소방장이 ‘4월의 우수 광주 소방인’으로 선정됐다.광주광역시소방안전본부는 26일 소방안전본부 회의실에서 2024년 4월 광주소방을 빛낸 ‘우수 소방인’ 2명에게 표창을 수여했다.소방행정 분야에서 선정된 소방학교 강혜원 소방경은 전국소방공무원 강의 경연대회 지도와 고품질의 소방교육 설계로, 서부소방서 김정민 소방장은 활기찬 직장 분위기 조성과 직원 근무환경 개선 등에 이바지한 공로를 각각 인정받아 4월 광주소방을 빛낸 ‘우수 소방인’으로 선정됐다.선정된 2명은 포상금 및 포상휴가, 광주광역시장 표창을 받았다.‘우수 소방인’ 선정 제도는 각종 현장활동 및 주요 현안업무 추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달 광주소방을 빛낸 직원 표창함으로써 조직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김문용 광주소방안전본부장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적극행정을 통해 광주소방을 더욱 빛내고 동력 확보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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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록관, 테리 앤더슨 기자 추모공간 운영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린 AP통신 전 특파원 고(故) 테리 앤더슨(Terry A. Anderson) 기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을 기록관 입구에 마련해 오는 5월1일까지 운영한다.테리 앤더슨 기자는 1947년 미국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태어나 1974년 AP통신에 입사해 아시아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1980년 5월 택시를 타고 광주에 들어와 5월22일 이후 항쟁의 과정을 지켜보고 현장을 직접 취재해 국가폭력의 실상을 보도했다.그는 항쟁에 참여하거나 목격한 시민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사화했다.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을 염원하는 시민과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를 계엄군들이 유혈진압하고, 시위와 관계없는 시민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해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는 것을 보도했다.테리 앤더슨 기자의 취재 자료인 텔렉스 원본과 신문 스크랩 원본 등은 1995년 오정묵씨(전 광주문화방송 연출가)가 그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입수했고, 2020년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에 기증했다.김호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광주시민과 함께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린 테리 앤더슨 기자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현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테리 앤더슨 기자의 취재기록 사본 5종을 소장하고 있다. 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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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테리 앤더슨 기자를 잊지 않겠습니다광주는 테리 앤더슨 기자를 잊지 않겠습니다故 테리 앤더슨 기자를 광주시민과 함께 마음 깊이 애도합니다.테리 앤더슨 기자는 5․18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총탄이 빗발치는 광주 시내를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이 시대의 진정한 언론인이었습니다.우리는 5․18 40주년 기념으로 방영된특집 다큐멘터리 <나는 기억한다>를 통해 보았던그의 용기 있는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그는 5․18뿐 아니라 전쟁과 분쟁이 있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때론 납치와 감금, 구타와 살해위협의 숱한 고통 속에서도인권과 정의, 양심과 이성의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여전히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끊이질 않고그날의 진실은 깊은 어둠 속에 침잠해 있습니다.오월광주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이제 곧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입니다.5․18을 세계인의 위대한 역사로 바로 세우는 일은故 테리 앤더슨 기자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감출 수 없습니다.지금도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수많은 테리 앤더슨 기자들과 함께5․18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바로 세워 나가겠습니다.故 테리 앤더슨 기자의 명복을 빕니다.2024년 4월 22일광 주 광 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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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 별세서당 선생이 학동 삼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첫째는 정승이라 했고, 둘째는 장군이라 했다. 얼굴 가득 웃음 짓던 서당 선생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뀐 건 셋째의 대답을 듣고서였다.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는 개똥의 용처를 이렇게 밝혔다. “글 읽기는 싫어하면서 정승 되기를 바라는 큰형 입에 하나, 겁쟁이면서 장군 되기를 바라는 작은형 입에도 하나.” 소년에게 우화를 들려주던 외할아버지가 이 대목에서 문제를 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누구 몫이겠니?” 소년이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 선생에게 먹으라고 했겠지요. 두 형의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요.” 외할아버지는 소크라테스처럼 잇대어 물었다. “너라면 그 말을 서당 선생한테 할 수 있겠니?” 소년은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큰소리쳤다. 외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하게 되면 마지막 개똥은 네 차지라는 걸 잊지 마라, 세화야.”(1) 소년의 아버지는 홍(洪, 넓다)씨 성을 가진 아나키스트였다. 일제 강점기 도쿄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표트르 크로폿킨의 ‘청년에게 고함’과 ‘상호부조론’을 일본어로 읽었다. 자식 대의 항렬자는 화(和, 화하다)였다. 홍과 화 사이에 세(世, 세상)를 넣어 맏이 이름을 지었다. ‘세계평화’라는 뜻이었다. 둘째 이름은 ‘민족평화’를 뜻하는 민화(民和)로 지었다.(2) 두 이름 앞에 홍이 붙자 세계는 세계대로, 민족도 세계만큼이나 드넓어졌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과 외할아버지와의 문답은 소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거대한 만유인력으로 작용했다. 이름은 고개 들어 먼 데를 바라보게 했고, 개똥 문답은 당면한 선택 앞에서 결심의 지침이 됐다. “세 번째 개똥을 하나라도 덜 먹겠노라고 일상적인 고문 행위와 억울한 죽음이 있는 사회에 맞서 나름 저항했다.”(3) 그것은 그의 생애 내내 “버거우면서 기꺼운 짐”이기도 했다.(4) 홍세화 선생이 18일 생을 마감했다. 버거우면서 기꺼웠던 짐도 비로소, 영원히 내려놓았다. 향년 77. 선생은 ‘한겨레’에 마지막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2023년 1월13일)를 쓴 어름에 암 진단을 받았다. 왜 마지막 글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선생은 고요하게 병마에 맞섰다. 증세가 호전돼 가족이 있는 프랑스까지 두 차례 먼 길을 다녀오기도 했다. 호전 기간은 짧았다. 미욱할 만큼 집에서 혼자 고통을 견디는 선생을 뒤늦게 지인들이 병원으로 옮겼다.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병세는 가팔라졌고, 항암치료도 중단해야 했다. 선생은 지난 14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평생 긴장 속에 살아온 삶과 지금의 병마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긴장론’을 떠올려보면, 그저 회한에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긴(緊, 줄어듦)과 장(張, 늘어남)은 대칭적 균형이다. 언중은 “긴장”이라 말하고 ‘긴’으로만 이해한다. 우뚝한 존재들의 삶에서 곧잘 이상과 실천이 단절되고, 이상도 실천도 둘 다 부러지는 이유다. 긴장은 강고함과 일관성, 그리고 지속성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요체다. 2017년 8월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새 헌법에 ‘기본소득’이 명시되어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상을 내려놓지 않은 웅숭깊은 사유자이면서 당면한 과제를 실천해온 단호한 행동가로서 선생의 삶이야말로 긴-장의 관계를 오롯이 보여줬다. 이름과 개똥 문답법, 짐의 버거움과 기꺼움의 관계에도 조응한다. 홍세화라는 이름 뒤에 붙었던 많은 호칭은 그의 생을 관통한 이상주의자와 실천가의 면모가 상호작용해 빚은 변증법의 자취다. ‘선생’이 그의 생애사를 통약해 붙일 수 있는 유일한 호칭인 이유도 그것이다. 그런 삶이 마침내 선생을 쓰러뜨렸다. 선생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전사’에서 망명 난민이자 작가로, 귀국 뒤로는 한겨레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몸담은 언론인으로, 이어 진보신당 당대표라는 현실 정치인으로, 다시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와 ‘소박한 자유인’ 대표로, 또 장발장은행장으로 살았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서 노역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벌금액 만큼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의 ‘수장’이 된 뒤, 그는 “가장 출세한 자리”라고 서툰 농을 했다. 자기 책상 하나 없는 자리였다. 선생은 자신의 생애사 주요 국면마다 긴과 장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남민전 사건은 동생 이름과 제 이름 사이에서 발생했다. 그가 속한 운동계열은 훗날 ‘민족해방’(엔엘·National Liberation)이라 이름 붙은 계열에 가까웠다.(5) 사건이 터진 뒤 프랑스에서 받은 여권에는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6) 그렇게 난민이자 세계시민이 됐다. 비로소 제 이름에 부합하는 정체성에 도달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홍세화씨와 그의 가족들.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홍세화 선생 제공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은 한국 사회에 선생의 이름 석 자와 함께 프랑스 사회의 면모를 알린 사건이다. 그가 소개한 ‘똘레랑스’(용인)는 지식 생태계에 커다란 유행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식 생태계와 진보 진영의 문해력은 똘레랑스에 똘레랑스하지 못했다. 똘레랑스 안에는 필연적으로 ‘비판’이 내재해 있으나, 한국 사회는 그 비판에 앵똘레랑스(불용인)했다. 귀국 이후 선생의 삶은 한국 사회의 앵똘레랑스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졌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선생은 한겨레신문사에 재직할 때도 가장 강력한 내부 비판자였다. 2002년 1월 귀국해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민주노동당 당적 보유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사내 공청회에 이어 구성원 당적 보유에 대한 사원 찬반투표까지 진행됐다. 결과는 ‘당적 보유 금지’가 다수였다. 선생은 ‘불용인’에 몸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늘 한겨레 구독신청서를 품고 다니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많은 구독신청을 받았다. 그의 재직 9년은 내내 긴-장이었다. 2007년 5월10일 홍세화 당시 한겨레 기획위원이 김훈 작가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홍세화 선생과 김훈 작가는 2000년대 초반 함께 한겨레신문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 한겨레자료사진 2011년 10월 한겨레신문사를 별안간 그만두고 진보신당 당대표에 출마할 때도, 선생은 진보정당의 얼굴격인 노회찬·심상정 의원의 탈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때 발표한 장문의 출사표 제목은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였다. 그는 “결국 상처만 입게 될 거”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명망가 진보 정치인들이 버리고 떠난 당을 지키기 위해 외할아버지의 개똥 문답법을 따랐다. 진보신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2% 미만 득표로 등록 취소됐다. 당의 등록 취소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였다. 선생은 한국 사회, 특히 진보 진영에 공부가 절실함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꾸린 학습공동체 이름이 ‘가장자리’에 이어 ‘소박한 자유인’인 것은 아버지의 작명만큼이나 우연적이지 않다. 프랑스에서 난민의 삶이 아웃사이더의 자리였다면 귀국 뒤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은 한국에서의 삶은 가장자리였다. 그는 그 가장자리에서 학동 삼형제의 막내처럼 진보 진영의 무지를 통박했고, 그 전에 자신부터 반성했다. 2012년 진보신당 당대표를 그만 둔 홍세화 선생은 이듬해 학습협동조합 ‘가장자리’를 결성해 활동했다. - 한겨레자료사진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이름은 선생이 평생 간직하고 지향해온 이상이 총체화된 형상이다. “소박한 자유인이란 소박한 생존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이면서 자아실현 또한 소박한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7) 선생에게 자유란 존재의 존엄과 고결한 삶의 토대를 뜻하는데, 그러려면 신자유주의처럼 무제한에다 만용적이고 타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여서는 안 된다. 소박한 자유에 대한 지향은 자연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기도 하다. 선생의 사상을 우리 사회의 납작한 분류 틀에 ‘배치’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공화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이자 사회주의자다. 무엇보다 그가 자유주의자이기에 그렇다. 존재의 존엄을 지키는 자유는 사회정의(공화주의), 자주성과 연대성(아나키즘), 그리고 분배정의(사회주의)와 함께해야 이룰 수 있다고 선생은 믿어왔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 길을 탐문하고 실천해왔다. 선생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는 긴(緊)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건 안간힘이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8)던 선생은 아무래도 뜻대로 장(張)하지는 못했던 성싶다. 그리고 마침내 쓰러졌다. 그는 담배를 피우러 작은 병원 건물 밖으로 나설 힘마저 사라진 자신의 형편을 무척 아쉬워할 만큼 대단한 애연가였는데, 장을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담배 말고 달리 없었을 터이다. 그의 마지막 사회적 실천은 더는 쇠잔해질 수조차 없는 그 몸을 이끌고 22대 총선에 사전투표를 한 것이었다. 끝없는 도전으로 온전히 소진하고 떠난 삶이었다.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시절의 홍세화. 2016년 6월1일. 한겨레 자료사진 자료/출처: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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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획전 ‘김대중, 다시 광야에서’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획전 ‘김대중, 다시 광야에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전시 ‘김대중, 다시 광야에서’를 18일 개막했다.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관통하고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 와 닮아있는 김대중의 생애를 3부에 걸쳐 들여다본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에게 전하는 글, 대통령으로서 문제를 해결해갔던 면모, 6·15남북정상회담 등 관련 글과 사진 100여점의 자료를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특히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됐던 청주교도소 감옥을 재현하고, 옥중서신 쓰기 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밖에 김대중 어록월, 노벨평화상 수상 포토존 등도 마련했다.전시회는 총 3부로 구성돼 제1부 ‘행동하는 양심으로’에는 1987년 6월항쟁에서 1980년 5월의 현장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구조로 구성됐다. 1987년 김대중이 탔던 열차를 전시공간에 재현하고 맞은편에는 관련 대형 영상면을 설치해 이해와 몰입을 높였다.글과 그림은 김대중과 광주사람들이 뜨겁게 해후했던 1987년 9월 광주로 향한다. 80년 5월 광주에 없었던 김대중을 광주사람들이 기다린 이유와 김대중에게 있어 광주의 의미를 되돌아본다.제2부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에서는 청년 사업가에서 현실 정치인으로, 마침내 국민의 정부로 나아갔던 김대중의 삶의 궤적을 담았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역사 앞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모습과 국민의 정부에서 강조했던 문화와 지식정보화 정책이 바꾼 현재를 살펴본다.제3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평화를 위해 헌신한 김대중의 생애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평화의 물결을 상징하는 거대한 구조물을 설치해 김대중이 바랐던 가치를 강조하고, 금강산 관광, 6·15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의 자료를 통해 노벨평화상의 무게를 전한다.이번 전시는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8월 18일까지 열리며, 자세한 내용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613-5361)로 문의하면 된다.최경화 광주역사민속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 앞에 올곧게 서고자 했던 김대중의 삶을 들여보길 바란다‘며 ”그가 남긴 정신적 가치가 우리의 삶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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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청년 취업전략 설계 ‘청년 업(UP)+’ 특강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는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자기 이해를 통해 취업 전략을 설계할 수 있도록 ‘청년 업(UP)+’ 특강을 오는 20일 오후 2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연다. ‘청년UP+’ 특강은 15세부터 39세 청년 총 160여명(강의당 40명)을 대상으로, ▲MBTI 분석과 진로 탐색 ▲맞춤 색상(퍼스널 컬러) 진단과 이미지 상담(컨설팅) ▲올해 채용 경향과 취업 준비 전략 ▲공감 의사소통 등을 설명한다. 이번 특강은 광주시가 고용노동부 주관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 27억원을 확보한 광주 청년일자리스테이션의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청년일자리스테이션은 15세부터 39세까지 지역 청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일자리 플랫폼으로 청년의 진로 탐색과 취업역량 강화프로그램, 정서와 신체 활력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과 심리상담을 제공한다. 지역 청년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고려해 아시아문화전당 근처에 1호점을 오는 30일, 상무지구에는 2호점을 5월중 각각 개소해 본격 운영한다. ‘청년 업(UP)+’ 특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광주청년정책플랫폼과 광주청년일자리스테이션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고, 참여를 원하는 청년은 18일 밤 11시30분까지 온라인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광주청년정책플랫폼(https://www.gwangju.go.kr/youth/)※ 광주청년일자리스테이션 누리집(https://jobstation062.modoo.at/)※ 신청서 링크(https://form.naver.com/response/l_yW7xmTKmE_FI2a8KVd5A) 오인창 청년정책관은 “지역 청년이 취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과 심리상담을 제공할 것”이라며 “프로그램 참여 이후 필요한 지역 고용정책과 연계해 청년이 취업에 성공하고 지역에 머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빛고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