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선생이 학동 삼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첫째는 정승이라 했고, 둘째는 장군이라 했다. 얼굴 가득 웃음 짓던 서당 선생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뀐 건 셋째의 대답을 듣고서였다.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는 개똥의 용처를 이렇게 밝혔다. “글 읽기는 싫어하면서 정승 되기를 바라는 큰형 입에 하나, 겁쟁이면서 장군 되기를 바라는 작은형 입에도 하나.”
소년에게 우화를 들려주던 외할아버지가 이 대목에서 문제를 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누구 몫이겠니?” 소년이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 선생에게 먹으라고 했겠지요. 두 형의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요.” 외할아버지는 소크라테스처럼 잇대어 물었다. “너라면 그 말을 서당 선생한테 할 수 있겠니?” 소년은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큰소리쳤다. 외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하게 되면 마지막 개똥은 네 차지라는 걸 잊지 마라, 세화야.”(1)
소년의 아버지는 홍(洪, 넓다)씨 성을 가진 아나키스트였다. 일제 강점기 도쿄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표트르 크로폿킨의 ‘청년에게 고함’과 ‘상호부조론’을 일본어로 읽었다. 자식 대의 항렬자는 화(和, 화하다)였다. 홍과 화 사이에 세(世, 세상)를 넣어 맏이 이름을 지었다. ‘세계평화’라는 뜻이었다. 둘째 이름은 ‘민족평화’를 뜻하는 민화(民和)로 지었다.(2) 두 이름 앞에 홍이 붙자 세계는 세계대로, 민족도 세계만큼이나 드넓어졌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과 외할아버지와의 문답은 소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거대한 만유인력으로 작용했다. 이름은 고개 들어 먼 데를 바라보게 했고, 개똥 문답은 당면한 선택 앞에서 결심의 지침이 됐다. “세 번째 개똥을 하나라도 덜 먹겠노라고 일상적인 고문 행위와 억울한 죽음이 있는 사회에 맞서 나름 저항했다.”(3) 그것은 그의 생애 내내 “버거우면서 기꺼운 짐”이기도 했다.(4)
홍세화 선생이 18일 생을 마감했다. 버거우면서 기꺼웠던 짐도 비로소, 영원히 내려놓았다. 향년 77.
선생은 ‘한겨레’에 마지막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2023년 1월13일)를 쓴 어름에 암 진단을 받았다. 왜 마지막 글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선생은 고요하게 병마에 맞섰다. 증세가 호전돼 가족이 있는 프랑스까지 두 차례 먼 길을 다녀오기도 했다. 호전 기간은 짧았다. 미욱할 만큼 집에서 혼자 고통을 견디는 선생을 뒤늦게 지인들이 병원으로 옮겼다.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병세는 가팔라졌고, 항암치료도 중단해야 했다.
선생은 지난 14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평생 긴장 속에 살아온 삶과 지금의 병마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긴장론’을 떠올려보면, 그저 회한에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긴(緊, 줄어듦)과 장(張, 늘어남)은 대칭적 균형이다. 언중은 “긴장”이라 말하고 ‘긴’으로만 이해한다. 우뚝한 존재들의 삶에서 곧잘 이상과 실천이 단절되고, 이상도 실천도 둘 다 부러지는 이유다. 긴장은 강고함과 일관성, 그리고 지속성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요체다.
이상을 내려놓지 않은 웅숭깊은 사유자이면서 당면한 과제를 실천해온 단호한 행동가로서 선생의 삶이야말로 긴-장의 관계를 오롯이 보여줬다. 이름과 개똥 문답법, 짐의 버거움과 기꺼움의 관계에도 조응한다. 홍세화라는 이름 뒤에 붙었던 많은 호칭은 그의 생을 관통한 이상주의자와 실천가의 면모가 상호작용해 빚은 변증법의 자취다. ‘선생’이 그의 생애사를 통약해 붙일 수 있는 유일한 호칭인 이유도 그것이다. 그런 삶이 마침내 선생을 쓰러뜨렸다.
선생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전사’에서 망명 난민이자 작가로, 귀국 뒤로는 한겨레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몸담은 언론인으로, 이어 진보신당 당대표라는 현실 정치인으로, 다시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와 ‘소박한 자유인’ 대표로, 또 장발장은행장으로 살았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서 노역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벌금액 만큼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의 ‘수장’이 된 뒤, 그는 “가장 출세한 자리”라고 서툰 농을 했다. 자기 책상 하나 없는 자리였다.
선생은 자신의 생애사 주요 국면마다 긴과 장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남민전 사건은 동생 이름과 제 이름 사이에서 발생했다. 그가 속한 운동계열은 훗날 ‘민족해방’(엔엘·National Liberation)이라 이름 붙은 계열에 가까웠다.(5) 사건이 터진 뒤 프랑스에서 받은 여권에는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6) 그렇게 난민이자 세계시민이 됐다. 비로소 제 이름에 부합하는 정체성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은 한국 사회에 선생의 이름 석 자와 함께 프랑스 사회의 면모를 알린 사건이다. 그가 소개한 ‘똘레랑스’(용인)는 지식 생태계에 커다란 유행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식 생태계와 진보 진영의 문해력은 똘레랑스에 똘레랑스하지 못했다. 똘레랑스 안에는 필연적으로 ‘비판’이 내재해 있으나, 한국 사회는 그 비판에 앵똘레랑스(불용인)했다. 귀국 이후 선생의 삶은 한국 사회의 앵똘레랑스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졌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선생은 한겨레신문사에 재직할 때도 가장 강력한 내부 비판자였다. 2002년 1월 귀국해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민주노동당 당적 보유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사내 공청회에 이어 구성원 당적 보유에 대한 사원 찬반투표까지 진행됐다. 결과는 ‘당적 보유 금지’가 다수였다. 선생은 ‘불용인’에 몸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늘 한겨레 구독신청서를 품고 다니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많은 구독신청을 받았다. 그의 재직 9년은 내내 긴-장이었다.
2011년 10월 한겨레신문사를 별안간 그만두고 진보신당 당대표에 출마할 때도, 선생은 진보정당의 얼굴격인 노회찬·심상정 의원의 탈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때 발표한 장문의 출사표 제목은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였다. 그는 “결국 상처만 입게 될 거”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명망가 진보 정치인들이 버리고 떠난 당을 지키기 위해 외할아버지의 개똥 문답법을 따랐다. 진보신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2% 미만 득표로 등록 취소됐다.
당의 등록 취소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였다. 선생은 한국 사회, 특히 진보 진영에 공부가 절실함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꾸린 학습공동체 이름이 ‘가장자리’에 이어 ‘소박한 자유인’인 것은 아버지의 작명만큼이나 우연적이지 않다. 프랑스에서 난민의 삶이 아웃사이더의 자리였다면 귀국 뒤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은 한국에서의 삶은 가장자리였다. 그는 그 가장자리에서 학동 삼형제의 막내처럼 진보 진영의 무지를 통박했고, 그 전에 자신부터 반성했다.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이름은 선생이 평생 간직하고 지향해온 이상이 총체화된 형상이다. “소박한 자유인이란 소박한 생존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이면서 자아실현 또한 소박한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7) 선생에게 자유란 존재의 존엄과 고결한 삶의 토대를 뜻하는데, 그러려면 신자유주의처럼 무제한에다 만용적이고 타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여서는 안 된다. 소박한 자유에 대한 지향은 자연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기도 하다.
선생의 사상을 우리 사회의 납작한 분류 틀에 ‘배치’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공화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이자 사회주의자다. 무엇보다 그가 자유주의자이기에 그렇다. 존재의 존엄을 지키는 자유는 사회정의(공화주의), 자주성과 연대성(아나키즘), 그리고 분배정의(사회주의)와 함께해야 이룰 수 있다고 선생은 믿어왔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 길을 탐문하고 실천해왔다. 선생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는 긴(緊)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건 안간힘이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8)던 선생은 아무래도 뜻대로 장(張)하지는 못했던 성싶다. 그리고 마침내 쓰러졌다. 그는 담배를 피우러 작은 병원 건물 밖으로 나설 힘마저 사라진 자신의 형편을 무척 아쉬워할 만큼 대단한 애연가였는데, 장을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담배 말고 달리 없었을 터이다. 그의 마지막 사회적 실천은 더는 쇠잔해질 수조차 없는 그 몸을 이끌고 22대 총선에 사전투표를 한 것이었다. 끝없는 도전으로 온전히 소진하고 떠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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