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보도 참사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 자막에서 시작된다.”
세월호 참사 228일 만에 방송기자연합회에서 펴낸 보고서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2014년 11월)은 이렇게 말머리를 연다. 이 보고서는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한국 언론의 첫번째 반성문 중 하나다. 보고서는 보도 참사를 다섯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방송사의 ‘전원 구조’ 오보를 부른 관행적 받아쓰기 보도, 참사 당일부터 보험금 운운한 비윤리적 보도, 대통령 방문날 유가족 항의를 음소거한 권력 편향적 보도, 시선을 유병언과 구원파로 돌린 본질 희석식 보도, 이 모든 과정에서 같이 나타난 국가의 책임에 대한 누락·축소 보도 등이다.
참사 이후 유가족이 거리로 나오고, 삭발·단식 투쟁을 하고,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고, 9개의 국가기관이 수사·감사·조사 등 진상규명 작업을 벌여온 지난 10년간 언론은 새로운 불신과 무책임의 역사를 축적했다. 지난달 27일 ‘세월호 10주기’ 기자회견에서 김종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언론이 가족들을 아프게 했다. 참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언론이었다”고 했다. 그간 새로운 반성문이 여럿 쓰였다. 한겨레가 이를 바탕으로 ‘세월호 보도 참사 10년사’를 돌아봤다.
■ 언론은 왜 유가족을 공격했을까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그리고 ‘국가는 왜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는가’. 두개의 질문을 붙들고 유가족이 결사하면서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 의제가 됐고, 사안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도 정파적 경향성에 따라 분열됐다. ‘세월호 사건 보도의 피해자 비난 경향 연구’(홍주현·나은경, 2015)는 종합편성채널(채널에이, 티브이조선) 메인 뉴스의 세월호 보도 속 단어 네트워크를 분석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보수 성향의 종편 채널이 시위에 나선 세월호 유가족을 ‘순수한 희생자’로부터 분리해 차별적으로 보도했다고 지적한다. ‘유가족=반정부 집단’ 프레임을 형성해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웠다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요구를 국민 다수로부터 분리해내는 ‘갈라치기 보도’는 보수 매체에서 일관되게 관찰된다. ‘세월호, 국가, 미디어’(이선민·이상길, 2015)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사설·칼럼을 비교 분석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여당이 압승을 거둔 2014년 7월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조선일보의 논조 변화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한다. 당시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노란 리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되는 완장”(9월19일)이 됐고, “국민 다수는 세월호에 대한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9월26일)했으며, 특별법으로 인해 “국민적 애도는 국민적 반감으로 바뀔 상황”(9월10일)에 처했다.
이는 “국민과 유족을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는 논법”으로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유족 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국민, 분별력 없고 시끄러운 소수로서 유족 대 현명하고 침묵하는 다수로서의 국민 등 이항대립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논문의 해설이다. 논문의 저자인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유가족의 기본적인 요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었는데 이것이 당장 보수 정권에 가져올 정치적 타격을 우려해서 (조선일보가) 더 공격적으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참사에서 공동체의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못 한 사례”라고 평했다.
■ 진상을 흐트러뜨린 의혹 제기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언론은 방해꾼에 그치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해 5월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가 발표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관련 보도 평가와 권고’(김성수, 2023)는 수년간 조사기구와 전문가들이 밝혀낸 진상규명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월호 참사는 밝혀진 것이 없다’는 사회적 통념이 굳건한 현실에 대해 언론의 책임을 따진 보고서다. 특히 선체조사위원회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내인설’로 상당 부분 설명이 가능해졌음에도 언론은 이를 알리기보다 무책임한 의혹 제기에 치중했다는 것이 비판의 뼈대다.
보고서는 ‘잠수함 충돌설’로 대표되는 외력설 의혹, 선박 자동식별장치(AIS) 항적 데이터 조작 의혹, 선내 디브이알(DVR) 바꿔치기 의혹 등을 제기한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한겨레를 향해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해당 의혹은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는 공지를 게재하라는 것이다. 한겨레가 지적받은 콘텐츠는 2016년 유튜브 한겨레티브이(TV) 채널에서 내보낸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이다. 김어준씨는 여기서 항적 조작설, 앵커 고의 침몰설을 처음으로 제기했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 ‘그날, 바다’ 등을 제작했다. 항적 조작설은 이후 검찰 수사, 선조위·사참위 조사 결과 기각됐다.
민실위 보고서는 언론이 △선조위·사참위 등 국가조사기구의 발표를 받아쓰기했고 △조사기구 내부 취재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증 없이 보도했으며 △사후 오류가 드러나도 정정하거나 후속 보도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해당 보고서를 집필한 김성수 뉴스타파 기자는 “그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진상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으니 10년이 지나도 논의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설령 유가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해도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싸워온 유가족의 목표를 방해하는 일이 된다”고 말했다.
■ 10주기, 돌아온 ‘가만있으라’
실패만 반복한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 9월 한국기자협회 등 5개 단체는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정확한 보도, 윤리적 취재,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 피해자 보호 등 원칙이 담겼다. 서수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세월호 학습 효과가 분명히 있다. 이태원 참사(2022) 때만 해도 유가족 인터뷰 전에 트라우마 전문가에게 질문지를 검수받은 기자가 있는가 하면, 택시 타고 현장에 달려가는 후배 기자에게 ‘심호흡하고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선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서 교수는 “이런 개인적 조직적 노력도 정치적 현실 앞에서는 막혀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한국방송에서 벌어진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불방’ 사건이다. 한국방송은 지난 2월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에게 오는 4월18일 방영을 목표로 제작 중이던 다큐멘터리 ‘바람과 함께 살아낼게’(가제)의 4월 방영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총선(4월10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제작진에게 내려온 불방 사유다. 결국 다큐멘터리 방영은 무산됐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세월호 다큐’를 불편해할 세력의 눈치를 본 정치적 결정이라고 본다. 이 역시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요구한 유가족의 뜻을 정치적으로 왜곡하는 일인데, 결국 우리 모두의 손해다”라고 말했다.
출처:한겨레신문, 편집:빛고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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