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후원을 하면서도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누구를 돕게 되어도 보도자료 등을 일체 내지 않으며, 무엇보다 언론사 인터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김주완 기자가 7년이 넘게 그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썼는데 그 숫자만 대략 100명이 넘는다. 김 기자는 김장하와 함께 산을 오르거나 모임에 참석하면서 곁에서 그를 바라봤고, 카메라도 없이 갔다가 핸드폰으로 부랴부랴 촬영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왜 학교를 설립했고, 왜 헌납했는지는 1991년 8월 그의 명신고등학교 이사장 퇴임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설립된 것이 이 학교이면, 본질적으로 이 학교는 제 개인의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본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본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교가 공공의 것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립화요, 그것이 국가 헌납이라는 절차를 밟아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활동을 이어왔지만 언론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0년대 첫 민선 진주시장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단체가 압도적으로 그를 진주시장 시민후보로 추대했는데, 그는 후보를 제안하러 오는 시민단체 대표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해 버리기도 했으며 주변에서 경남도문화상이나 진주시문화상, 경남교육대상을 추천하려고 해도 못하게 하거나 '본인이 싫다는데 왜 하려고 하느냐'며 극구 사양했다는 일화가 있다.
호 남성(南星)은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김장하 선생은 '남성(=남두육성, 南斗六星)은 목숨(壽)을 맡은 별이라고, 남성이 비치는 곳에서는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다들 오래 살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평생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했다. 집도 따로 없이 한약방 건물 3층을 집으로 사용했으며, 해외여행도 다닌 적이 없는데 여행이라고는 2005년 평양을 방문한 것이 전부라고 알려져 있다. 이 역시 6.25 전쟁 때 전사했다고 알고 있었던 친형이 살아있다는 연락을 받고서였다.
명신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있던 당시 전교조 해직사태가 터졌으나 정부의 압력에도 단 한 명의 교사를 자르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2022년 연말 MBC경남 유튜브와 TV를 통해 동시공개된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 호평이 이어지자, 설 연휴 전국방송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이 재방영되었다. 이 다큐의 감독 김현지는 그를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고 표현했다.
야구선수 최동원의 팬이라고 밝혔고, 지금은 NC 다이노스의 팬이라고 한다. 다큐가 방영된 뒤 배주현 창원시 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는 "이런 분이 NC 팬인 것이 코리안시리즈 우승보다 더 뿌듯하다"고 말했고, NC는 선수단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전달하기도 했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넷플릭스 화제작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과 Wavve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를 꺾고 교양부분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지역 지상파의 작품이 수상하는 것은 어른 김장하 프로그램이 최초라고 한다.
2023년 11월 15일, 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극장판 버전이 전국 동시 개봉했다. 더 마블스 등의 대형 블록버스터에 밀려서 상영관은 1일 1~2회 정도만 확보한 편. 김의성 배우 등 영화계 명사들이 MBC경남 시사교양 유튜브 채널[11] '엠키타카'를 통해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